하교 후 아이에게 묻습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합니다. “그냥”, “몰라”, “별거 없어.” 부모 입장에서는 괜히 마음이 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지, 학교 생활이 힘든 건 아닐지 생각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꼭 문제가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아이의 감정과 에너지가 소진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하루 종일 말을 합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고, 친구와 대화하고, 규칙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합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조용해지는 이유는, 말을 안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다 썼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리되지 않은 하루
아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로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루 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걸 순서대로 정리해서 말해야 합니다.
어른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초등학생에게는 아직 경험을 말로 정리하는 힘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이라는 말로 대신하게 됩니다.
대답 하나에도 평가가 따라온다고 느낄 때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분위기를 읽습니다. 학교 이야기를 꺼냈을 때 부모의 표정이 바뀌거나, 질문이 이어지거나, 조언이 따라오면 아이는 그걸 기억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학교 이야기는 설명해야 하는 일, 잘 말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이때 아이는 차라리 말을 아끼는 쪽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문제가 없어서 안 말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는 종종 아이가 말이 없으면 걱정부터 합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굳이 말할 만큼 큰 일은 없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힘들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던 하루는 아이에게 굳이 꺼낼 이야기가 아닌 하루일 수 있습니다.
집은 쉬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학교에서는 계속 긴장하고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집에 오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싶어 합니다.
이때 학교 이야기를 자세히 묻는 질문이 반복되면, 아이는 집에서도 다시 학교로 돌아간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말은 더 짧아집니다.
대화를 바꾸면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다
“학교 어땠어?” 대신, 전혀 다른 질문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 오늘 제일 웃겼던 일 있었어?
- 급식은 뭐 나왔어?
- 쉬는 시간엔 뭐 했어?
이런 질문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부담 없이 입을 열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마무리 — 초등학생이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꼭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지 않는 시간도 아이에게는 필요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아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준비가 되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나옵니다.